2009년 7월 23일 목요일

생명, 생명력, 육신, 죽음이라는 것 .... 그리고 '의(醫)'의 의미.

 

생명력이라는 것 ....

 

살아있다고하는, 사람을 구성하는 세포는 ....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것일까?

죽기위해 발버둥치는 것일까?

 

 

세포가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것이라면 ....

육신은 왜 어느 순간 죽음이라는 것을 맞이하는 것일까?? ( 사람에 대한 경우만 생각해보려고 한다. )

죽음의 정해진 때가 있는걸까??

 

세포가 죽기위해 발버둥치는 것이라면 ....

왜 세균감염이나 암이 발생했을때, 사고로인한 손상에 무던히 저항하면서 스스로 회복하고 그 생명력을 이어가려고 하는 것일까??

인생이 존재할 수는 있을까??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나'는 지금도 '나'인데 ....

탄생 직후에 '나'를 구성하고 있던 세포는 지금의 '나'에겐 하나도 존재하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그런데도, 그때의 '나'가 지금의 '나'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럼, 인생은,

세포로 구성된 육신 말고도 또다른 무엇인가가 있는가?

많은 이들이 '생명'이라고 말하는 그런거??

 

 

 

어떤 이들은,

육신이 죽으면 끝이라고 말한다. 육신이 존재하지 않기에.

그저 '자연의 순환'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백년도 못사는 짧은 인생속에서도 충분히 경험되어질 수 있는, 진리일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이다.

 

육신의 죽음이 끝이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의(醫)'는 어떤 의미일까?

'의(醫)'를 통해서 끝이 빨리오는 것이 막거나 더디게 하는??

육신의 죽음이 끝이라면, 왜 그 끝을 막거나 더디오게 해야할까?

결국, 육신이 죽으면 끝인데!! 빨리 오고, 더디 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을까????

 

 

 

또, 어떤 이들은,

육신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후의 세계가 있고,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사후의 세계를 준비하라고 말한다.

깨달음을 얻으라고 말한다.

 

이들은 인생이,

육신과 또다른 '무엇'으로 이루어져있다고 말한다.

 

인생이 ....

세포로 구성된 육신 말고 또다른 '무엇'인가가 있다면,

육신의 죽음은 이 또다른 '무엇'에겐 어떠 의미가 있는가? 혹은 영향을 미치는가??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나'는 육신의 죽음 이후에도 '나'인가????

 

 

 

만약 인생이 ....

육신과 또다른 '무엇'( 그것이, 靈이든, 神이든, 생각이든, 마음이든 )이 함께하는 것이라면,

육신이 죽은 후에도 그 '무엇'은 존재한다는 말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아니라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죽으면 끝 일테니까.

 

인생들의 종교는, 믿음은, 신앙은, 아마도 이 '무엇'때문에, 이 '무엇'에서부터 시작되는듯하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모든 종교가, 믿음이, 신앙이,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국이, 윤회를 벗어난 해탈이, 신선이 되는 것이, ....

 

인생들의 종교는, 믿음은, 신앙은,

거추장스러운 육신을 벗어던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육신을 벗어던지는 것은, 육신의 죽음을 말한다.

 

이 '무엇'을 중요시하고, 거추장스런 육신을 벗으라 말하는 인생들에게 '의(醫)'는 어떤 의미일까?

'의(醫)'는 육신을 벗는데 방해가 되는 것 아닌가?

 

인생들의 종교는, 믿음은, 신앙은, 이 '무엇'을 때문에, 혹은 이 '무엇'을 위해 깨달음을 얻으라고 말한다. 깨달음 이전의 육신의 죽음은 절대적인 고통이라고 말한다.

( 공자의 도(道)가 종교나, 믿음, 신앙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  공자가 '죽음'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계사전을 끼고 살았다고 하는데 .... 계사전에서 뭘 발견하고 깨달았을까??!!!! )

 

다시, 이 '무엇'을 중요시하고, 거추장스런 육신을 벗으라 말하는 인생들에게 '의(醫)'는 어떤 의미일까?

 

아직 깨달음이 없는 인생들에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연장해주는 의미에서의 '의(醫)'?

이미 깨달음을 얻은 인생들은 육신의 죽음에서 자유로워졌을테니 .... '의(醫)'라는 것은 그저 평범한 것일 뿐일듯.

 

 

결국, '의(醫)'란 인생들이 깨달음을 얻는데 있어서 시간을 연장해주고,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줌으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 아닐까??!!!!

그리고, '의(醫)'를 하는 자는 이것을 깨닫고, 우선 먼저 자기 인생의 깨달음을 위해, 나아가 다른 인생들의 깨달음을 돕는데 '의(醫)'를 사용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그로 인해 육신의 죽음이 평범한 어떤 것이 되도록하는 ....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의(醫)'가 그저 평범한 어떤 것이 되도록하는 ....

 

 

 

P.S.

그런데,

옛적 그들은 ....

정말 깨달았을까??!!!!

 

 

 

댓글 1개:

  1. trackback from: 신호등과 사진기
    길을 급히 걷다가 신호등이 나를 막아서면 주위를 한번씩 둘러본다. 신호등이 나를 막아서지 않는다면 내가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얻을 수 있을까? 사진기를 갖고도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면 그건 서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기 속에 선명한 지금의 모습을 담으려면 나는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 길을 걷다가 문뜩 사진기를 쓸 때가 있다면 신호등이 나를 막아설 때일 것이다. 신호등이 나를 막아서면 가로등, 연석, 화분, 사람들 모두 내게 달려든다. 쉼 없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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